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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다녀온 성지(필립핀) /[김대건 성인과 최양업 신학생의 유학중 피신지] 필리핀 롤롬보이 ...

기쁨을주는사람 2010. 6. 25. 19:31

* 다녀온 성지(필립핀) /[김대건 성인과 최양업 신학생의 유학중 피신지] 필리핀 롤롬보이 ... 

필리핀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약 40km 떨어진 롤롬보이(Lolomboy)에는 김대건 성인과 최양업 신학생이 마카오에 유학중이다가 1837년 8월 마카오 민란으로 피신을 하였던 당시 도미니칸 수도원 농장이 있다. 다음해 1838년 12월 마카오로 돌아 갔다가 1839년 4월 다시 민란으로 이곳에 와서 그해 겨울 11월에 마카오로 갔다. 그후 김대건 성인은 1842년 2월 28일 대만으로 가기 위해 다시 이곳에 들러 10일 정도 머물다가 간 인연 깊은 곳이다

모방 신부는 1836년 부활절(4월 5일)을 전후하여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의 공소를 순방하던 중 골배마실에 인접한 은이 공소를 방문하였다. 그는 여기서 김대건을 신학생 후보로 선발하고 세례를 주었다. 김대건에 앞서 두 소년이 신학생으로 선발되었는데, 최양업(崔良業. 토마스)은 2월 6일에, 최방제(崔方濟, 프란치스코)는 3월 14일에 각각 서울로 올라와 한문과 라틴어 등 외국으로 유학 갈 공부를 히며 수련 중에 있었다. 그러나 김대건은 7월 11일에서야 이들과 합류하였다.

모방 신부는 박해 때문에 국내에서는 조선인 성직자 양성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신학생들을 파리 외방전교회 동양 대표부가 있는 마카오에 보내기로 했다. 세 신학생들은 12월 2일 서울을 떠나기 전, 앞으로 공부하게 될 신학교 교장에게 순명할 것과 교구 신부가 되어 열심히 봉사할 것을 서약하였다. 그리고 12월 3일 중국으로 귀환하는 유방제(劉方濟) 신부와 정하상(丁夏祥), 조신철(趙信喆) 등 신자들의 인도를 받으며 변문으로 떠났다. 이때 조선인 신자들은 변문에서 새로 입국하는 샤스탕(Chastan, 鄭) 신부를 맞아들여 귀경하였고, 세 신학생들은 샤스탕 신부를 안내한 중국인 안내원들을 따라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남하하여 1837년 6월 7일 마카오에 도착하였다.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조차지(租借地)로서. 서양인들이 극동 진출의 근거지로 삼은 곳이며, 동양 전교 활동의 거점이었다. 출발할 당시에는 세 신학생들이 공부할 장소가 결정되지 않았었다. 이들은 파리 외방전교회가 운영하는 동양인 성직자 양성소인 페낭 신학교에 갈 수도 있었지만, 당시 이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중국인 신학생들이 소요를 일으킨 일이 있어서 면학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파리 외방전교회 신부들은 파리 외방전교회 동양 대표부에 조선인 신학교를 세워 교육을 맡았다. 세 신학생들은 현지에서 일어난 민란으로 인하여 1837년 8월부터 1838년 겨울까지, 1839년 4월 6일부터 11월까지, 두 차례나 필리핀의 마닐라와 롤롬보이로 피신하였다. 그때마다 신학생들은 그곳에서 몇 개월 동안 공부하다가 마카오로 다시 돌아오곤 하였는데, 이런 와중에 신학생인 최방제가 1838년 11월 27일 열병으로 죽었다. 김대건의 건강 역시 좋은 편은 아니었다. 두 신학생은 1841년 11월 철학 과정을 마치고 신학 과정에 들어갔다.

1842년 아편 전쟁이 끝날 무렵, 두 신학생은 아직 수학 중이었지만, 프랑스 함대의 함장 세실(Cecille)은 마카오 대표부를 방문하여 조선 원정 계획을 알리면서 조선인 신학생 한 명을 통역으로 동행시켜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몇 년째 조선 교회로부터 소식이 끊겨있었던 터라 대표부 신부들은 이번 일을 하느님이 주신 기회로 여겼다. 김대건은 조선 포교를 지망한 메스트르(Maistre, 李) 신부와 함께 2월 15일 에리곤(?rigone)호를 타고 마카오를 출발, 2월 28일 마닐라를 도착하여 10일후인 3월 10일 마닐라를 출발하여 대만을 경유 오송(吳淞)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프랑스 함대는 1842년 8월 29일 남경조약(南京條約)이 체결되자 조선 출동을 중지하고 마닐라로 회항하였다. 그래서 김대건은 하선하여 강남교구장 베지(Besi)의 도움을 받아 중국 배를 타고 귀국 길에 오르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성인이 머물러 공부하였던 이 자리에 그분의 거룩한 삶과 그분의 순교정신을 기리고자 오기선(요셉)신부의 지도하에 마닐라 한인 천주교회 신자들과 고국의 신자들이 뜻을 모아 김수환 추기경과 마롤로스 교구장 알마리오 주교 임석하에 1986년 5월 22일 동상을 세웠는데 성인을 이곳 관할 롤롬보이 성당의 주보 성인으로 모시게 되었다. 그후 2002년 10월 수원교구산하 성 안드레아 수녀원에서 부지를 매입하여 관리를 하게되어 현재 해당 수녀원 수녀들이 그곳에 머물며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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