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 ...
“잘 지내?”
“그럼”
“아픈 덴 없구?”
“응”
“감기 조심해. 요즘 감기가 지독해서...”
“걱정마”
“언제 한번 집엔 안 와?”
“요즘 바빠?
언니와 동생이 간혹 수녀원으로 전화를 하면
보통 이런 대화로 끝이 납니다.
언니와 동생은 수녀와 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만
냉랭한 수녀는 바쁘다는 얘기로 전화를 마무리합니다.
전화를 끊고 나면 살짝 좀 더 다정하게 말하지 못한 나를 책망하며
후회하곤 합니다만 다음 번 전화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실은 그렇게 가족들의 전화에 냉정하게 대하는 수녀도
가족들과의 애정 어린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연세 드신 부모님이 걱정되어
집에도 가보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나 자신에게나
그런 마음들이 생기기 시작하면 자꾸만 조금 더 조금 더
그 영역을 넓혀 가기가 쉬울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데서 하나를 가지게 되면 감사하고 행복해 하지만
다섯 개를 가지고 있다가 하나만 남으면
속상하고 섭섭하고 때론 화도 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누구나가 그렇습니다.
수도삶을 사는 이 사람도 말입니다.
요즘 사순 시기를 보내면서
작은 극기와 사랑을 계획하고 살려 노력합니다.
그중에 하나는 내면을 잠잠히 하겠다는 내적 침묵에 관한 것입니다.
내가 한 개만 갖고 있든 다섯 개를 가지고 있든
아니,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든지
그것이 나를 흔들지 않도록 말입니다.
물에 비친 나는 작은 파장에도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파장이 크든 작든 물은 흔들리고 물에 비친 나 역시 흔들립니다.
나를,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들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작은 파장도 잠잠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맘에 안 드는 것이 많아지고, 화나는 일이 늘어날수록 내면은 전쟁터입니다.
이 시끄러운 내 안에서 고요를 찾게 해주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홀로 주님 안에서
깊은 침묵으로 나를 잠잠케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깊은 침묵 안에, 기도 안에 머물며 오늘 하루
크고 작은 파장으로 힘겨운 분들을 기억합니다.
“내 영혼아, 주님 안에 잠잠해져라.”
바오로딸 홈지기수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