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집에 휴가를 갔다가 본당 수녀님으로부터
저희 부모님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든이 넘으신 데다 다리까지 불편하신 아버지께서는
아직 소소하게 본당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하느님 품으로 가실 때까지는 계속 봉사하고 싶으시다는 말씀을
아버지께서 몇 번이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지난 번 본당에서 몇 군데 좋은 곳을 구경하러 가셨었는데
꽃이 핀 ‘난(蘭)’화분을 하나 사시더랍니다.
원장 수녀님께서는 팔십이 넘으신 할아버지께서 꽤 무거운 화분을 사서
서울로 가져가시려는 것을 보시고,
“할아버지, 서울 가서 사세요. 서울에도 그거 팔아요.”하시니
아버지께서는 그저 웃으시며 화분을 사서 안으시더랍니다.
그래서 다시, “그런데 그건 왜 사세요?” 하고 물으시니,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
“몸이 아파 어디 다니지도 못하고 집에 누워있는 마누라에게
이 난 꽃이라도 보여 주려고요.” 하시더랍니다.
본당 수녀님께서는 그날 이후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그런 저의 아버지 모습이 떠오르신다며
감동하셨던 그때를 다시 제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여든이 넘어 불편하신 다리를 끌고 날마다 새벽미사에 참례하시고,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주보를 접기 위해 성당에 오시며,
아프신 어머니를 위해 이런 저런 사랑을 살고 계시다고요.
배움이 많고 교양이 있는 여느 부모님들 같지 않고,
시끌벅적 큰소리를 내며 자주 다투기도 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니
상상이 가지 않는 모습인지라 사실 저도 좀 놀랐습니다.
그런데 대장부처럼 열심히 살아오신 어머니께서 계속 아프신 후로는
아버지께서도 많이 변하신 듯합니다.
길어진 병고에 예민해지신 어머니의 잔소리와 구박이 좀 심해지셔서
아버지가 걱정되어 전화를 드리면 괜찮으시다며
되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귀여우시답니다.
참 이해하기 어려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만,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아버지 마음을 알 것도 같습니다.
50여 년을 넘게 함께 한 부부의 역사를
어찌 제가 안다고 하겠습니까?
아무리 저의 부모님이시지만
부부는 또 다른 차원의 관계인걸요.
오늘, 부모님의 사랑과 그 사랑의 열매가 여기 이렇게
한 사람의 수도자로 영글게 해주심에 감사드리며
깊어가는 가을에 참사랑이 무엇인지 잠시 머물러 봅니다.
바오로딸 수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