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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틈을 내어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

기쁨을주는사람 2009. 9. 30. 12:02

 

                                 

          잠시 틈을 내어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가는 길마다 가을이 진하게 물든 풍경이
          어찌나 고운지 우중충하던 마음까지
          다시 고운 빛깔로 물드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른 벼들은 일찌감치 노랗게 물들어 있고
          철없이 핀다 구박받던 코스모스도 가을의 꽃답게
          가는 길마다 깔깔대며 피어있습니다.

          조금 더 근사해져가는 동네 모습도 보이고
          세월 따라 허리가 굽고 주름이 늘어가는
          마을 어르신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도 세월과 동행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바지런한 손놀림이 들판을 풍성하게 채우고 있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뿌듯해지는 기억 속에
          어머니의 모습이 오래도록 남습니다.
          모처럼 어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고구마 밭에 갔더랬습니다. 고구마 줄기를 헤치고
          땅을 파니 잘 생긴 고구마들이 얼굴을 내밉니다.
          가져간 바구니를 채워 돌아오면서
          집을 나설 때부터 내내 뭔가 이상하다 싶은 것이
          마음에 환하게 들어옵니다.

          어머니는 꼭 한두 걸음 뒤에서 저를 따라오고 계십니다.
          걸음을 맞추려고 제가 조금 천천히 걸으면 어머니도 속도를 줄이시고
          제가 멈추면 어머니도 딱 그만큼의 간격을 유지하고 서십니다.
          힘이 드신가 싶어 팔을 잡아 드리려고 하면 한사코 괜찮다 시며
          아직 누가 잡아 줘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십니다.

          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쯤에서
          어머니가 좀 앉았다 가자고 하시기에 바람이 좋은 자리에 앉아 봅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어머니는 제 뒤쪽에 자리를 잡고 앉으셔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수도원에 돌아와서도 왜 그러실까 내내 궁금했습니다.
          그러다가 잠깐 외출을 하다가 골목에서 아이를 앞세우고 가는
          젊은 엄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앞에 폴짝폴짝 뛰는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위험하다 싶으면 주의를 줍니다.
          그 모습 앞에서 새삼 어머니의 마음이 환하게 보입니다.
          자식보다 앞서 걷지 않으시는 어머니,
          항상 자식 뒤에서 걸으며 자식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어머니의 마음이 사랑이며 나를 지탱하는 기도구나 싶습니다.

          어머니가 되면서부터 자연적으로 몸에 익힌 습관일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꼭 마음에 담아 두고 지켜보고
          응원하고 계시는 어머니의 존재감이 힘이 됩니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는 풍성한 계절입니다.
          이제 명절이라 고향으로 향하는 걸음도,
          가족에게로 향하는 걸음도 설레고 분주해지는 시간입니다.
          가족과 이웃이 나누는 마음이 어머니의 마음처럼
          서로에게 기도가 되어 주는 시간이길 기도합니다.

          바오로딸 수녀 드림